구)제작노트
제작노트 #2
맨땅에 헤딩하며 만든
첫 샘플

 


"그럼 네가 만들어봐. 네 맘에 쏙 드는 거" 라고 남편이 저의 가슴에 불을 지른게 저희 아기 100일 즈음이었어요. 매일 저녁 퇴근한 남편을 붙잡고 내가 만들 아기띠는 이랬으면 좋겠다 저랬으면 좋겠다, 구조는 이렇게 생기면 좋을 것 같고 원단은 어땠으면 좋겠고, 대략 가격은 얼마였으면 좋겠다, 신나게 떠들었죠. 그렇게 매일 밤 상상의 나래를 펼친지 1주일 쯤 되니까 남편이 "계획만 세우지 말고, 뭐라도 좀 해봐"라고 하더라구요. 맞는 말이었어요. 말하는 건 쉽고, 실행은 어려우니까요. (하지만 그 맞는 말은 꼭 듣기가 싫..)




아이디어 구상만 하고 전업육아 하던 시절

 


당시엔 전업육아 중이었고 아기에게 손이 많이 갈 때였기 때문에 일할 시간이 너무 부족했어요. 하루 종일 아기 젖 먹이고 놀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아기가 낮잠, 밤잠에 들면 짬을 내서 관련 자료를 찾아보는게 전부였죠. 머릿 속에서는 막 공장에서 두두두두.. 미싱하고 짜잔! 멋진 제품이 예쁜 패키지에 담겨서 날개 돋힌듯 판매되는 (말도 안되게 그림같은) 상상을 했거든요. 근데 이게 아주 맨 처음부터 제품 기획을 하려고 보니 맨 땅에 헤딩, 중에 헤딩이 따로 없더라구요. 비유하자면, 만들어 본 경험도 없고 물어볼 사람도 없는데 '제가 배 한 척을 만들어보겠습니다!' 라고 외치고 가만히 멍때리고 서 있는 기분. 



아기띠 구조와 형태, 원단 혼용, 컬러, 사이즈별 스펙, 포장 방법, 포장 부자재, 브랜드명, 제품 이름, 촬영.. 이렇게 굵직한 이슈 외에 KC인증, 공장 섭외, 물류 계약, 판매 채널 계약.. 말도 안되는 큰 이슈들이 겹겹이 놓여있었어요.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그 때 부터는 상상하는게 즐겁지 않고 괴롭더라구요. 구체적으로 할 일이 하나씩 늘어갈 수록,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었어요. 할 일이 구체화될 때 마다 저는 집안일, 육아를 더 열심히 했습니다. 도망갈 데가 현실 밖에 없었으니까요. 


 

당시 저는 육아 휴직중이었고 남편은 퇴사를 하고 다음 일을 구상하던 시점이었는데, 제가 일은 시작도 안 하고 맨날 컴퓨터만 하다가 한숨 푹푹 쉬고 집안일 열심히 하는 걸 보더니 "이랑아 너 못기다리겠다. 내가 다른 사업을 하는게 더 빠르겠어" 하더라구요? 어딘가 정곡을 찔린것만 같은 느낌에, 분하고 울화가 치밀었어요. 나도 한다면 하는 사람인데.. 창업이라는 건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서 막막하기만 하고, 집안일이랑 육아도 소홀히 할 수가 없다고 이야기 했더니 남편이 시터이모님을 구하자는 제안을 내놨어요. 집안일과 육아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아야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거라고. 


 

사실 저도 아기띠 사업을 저의 다음 커리어로 심각하게 고민하고 시작한 건 아니에요. 그냥, 아이디어가 있는데 한 번 해 볼까? 정도였죠. 회사 선배 중에 평소 해 보고 싶던 신발 쇼핑몰을 해보고는 사업은 자기 체질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복직해서 정말 열심히 회사생활 하는 언니가 있었거든요. 저도 딱 그 정도, 부담없이 망하고 그 망한 경험으로부터 뭔가 배우고, 다시 회사 생활 열심히 하는 육아맘. 그 모습이 어쩌면 저의 다음 커리어라고 막연히 생각했었어요. 왜냐하면 회사생활을 하면서 늘 저는 불평이 많았거든요. 왜 해야 하는지 모르는, 하기 싫은 일을 할 때 마다 회사 선배들은 '그럼 니가 회사 차리든가' 라고 했고, 언젠가 내가 내 사업을 한다면...? 이라고 막연히 상상했던 시간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늘 회사 다니면서도 때려치우고 사업하면 되지! 하는 아쉬움이 있었어요. 그래서 결심했죠. '망할거면 빨리 망하자. 그래야 미련없이 회사 생활도 열심히 할 수 있을거야.'


 

정말 아무것도 모르지만 아기띠를 만들려면 원단이 있어야 하니, 동대문 원단 시장에 나갔어요. 아기를 안고 그 큰 원단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좌판에 나와있는 원단 쪼가리(스와치)들을 만져보고 당겨보고 물어보고 다녔어요. "아저씨 이 천 뭐에요?" "뭐긴 뭐에요 다이마루지" "다이마루가 뭐에요?" "......(말잇못)..." 아주 기초적인 질문에 돌아오는 대답은 침묵 뿐이었어요. 공부가 덜 됐다고 생각하고 첫 날은 생선골목에서 밥만 먹고 돌아왔네요. 둘째 날엔 좀 더 찾아보고 갔어요. 원단 스와치는 물어보고 가져와도 된다. 샘플은 야드 단위로 끊는다... 괜찮아보이는 원단 스와치를 집에 가져와서 당겨보고, 폭풍 검색을 통해 원단과 가공법에 대한 대한 공부를 시작했어요.


 

생선구이만 먹고 돌아온 동대문 첫날

 


괜찮아보이는 원단 몇 개를 골라 노트에 붙이고, 주문 하면 다음날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아놨고. 이제 집 앞 세탁소로 갔어요. "아저씨, 여기 미싱으로 옷도 만들어 주시나요?" "아가씨 그런 건 의상실, 샘플실 그런데 가야해요. 여긴 터진데 꿰매는 데에요" 샘플실... 집에 와서 폭풍 검색을 시작했죠. 근데 샘플실 정보는 인터넷에 아무리 검색을 해도 잘 없더라구요? 그도 그럴 것이, 일반 소비자들이 가는데가 아니니까요. 봉제 관련 카페에 댓글을 달고, 여기저기 전화걸어 수소문을 해서 청계천에 아동복 샘플 장인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는 무작정 전화를 했어요. "저 아기 키우는 엄마인데요, 아동복은 아닌데... 암튼 아기띠를 만들고 싶어요. 원하는 형태는 그림을 대충 그려놨구요. 한 번 찾아가도 될까요?" "네 그러세용~" 수화기 건너로 친절한 목소리를 들으니 한 줄기 따뜻한 빛이 저에게 내리쬐는 느낌이었어요. 맨날 동대문에서 듣보잡이라고 무시만 당하다가, 처음으로 친절한 목소리를 들으니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어요. 


 

청계천 골목 낡은 건물 맨 꼭대기층. 아기를 안고 무작정 찾아간 샘플실. 저 같이 뭔가 해 보고 싶어하는 육아맘들을 몇 분 보셨다는 샘플실 선생님께서 물어보셨어요. "패턴은 있어요? 원단은요?" 제가 대답했어요. "패턴이 뭔지 모르겠는데 다음에 올 때 까지는 준비해올게요. 원단도 가져올게요." 



 

무작정 모눈 종이에 패턴 그리기 (원래 이렇게 하면 안되는 거였음..)

 


알고보니 패턴이라는 건 원단을 자르는 도면 같은거더라구요. 모눈 종이를 사서 일단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아기띠를 만들어보고 싶은 원단도 7-8가지를 골라서 준비했죠. 면 100%짜리 원단, 기능성 요가복 원단, 쿨링 기능이 있다는 또 다른 기능성 원단, 얇고 가벼워보이는데 스판 안 섞인 원단, 스판 섞인 원단.. 보통은 패턴으로 옷을 한 벌 만드는데, 저는 패턴 하나로 아기띠를 원단만 바꿔서 7종류를 만들자고 하니 샘플실 선생님이 놀라시더라구요. 어쩔 수 없었어요. 저는 경험으로 배우는 스타일이고, 한명의 소비자 입장에서 제가 직접 써봐야 안되는 건 왜 안되는지 되는 건 왜 되는지 확신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렇게 2주의 시간이 흐르고 샘플실 선생님으로부터 한 장의 사진을 받았습니다. 코니아기띠의 첫 샘플이었어요. 



원단 테스트를 위해 종류별로 아기띠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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