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작노트
제작노트 #1
"직접 만들어봐.
네 맘에 쏙 드는 아기띠"



아이를 낳기 전 저는 농구와 필라테스를 좋아하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30대 직장인이었어요.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게 됐고 임신 9개월까지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출산이 얼마 남지 않아 준비물들을 하나씩 사야했는데, 정보도 많이 없고 참 막막하더라구요. 베이비페어에도 가보고 폭풍 검색도 하면서 하루에 하나씩 일을 해치우듯 쇼핑을 했어요. 하지만 유모차랑 아기띠는 아무리 검색을 하고 후기를 찾아봐도 도무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출산 이후의 삶에 대해 1도 모르던 임산부 시절..

 


유모차는 베이비페어에 가서 어찌저찌 해결을 했는데 예정일이 다가올 때 까지 아기띠를 못 사고 끙끙대고 있으니, 보다 못한 친구가  '신생아 슬링으로 유명한거래. 오래는 못 쓴다고 하던데 그래도 신생아 때는 엄청 유용하대' 하며 천으로 된 슬링을 하나 선물해줬어요. 친구 말대로 검색을 해 보니 오래는 못 쓴다고들 하더라구요? 추가로 하나 더 사둬야겠다 싶었습니다. 근데 아무것도 모르겠으니까 비싸고 남들 많이 쓰는 거를 사게 되더라구요. 유럽 왕실에서 쓴다는 20만원대 수입 아기띠를 마지막으로 대략적인 출산 준비를 끝마치고 저는 출산을 했어요.  


 

출산 후의 생활은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고단하고 외로운 날들의 연속이었어요.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존경스럽고, 젖동냥을 해서 심청이를 키웠다던 심봉사는 진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심봉사 스토리는 지금 다시 생각해도 눈물이..) 하루에 8번씩 아이 젖을 먹여야했고, 기저귀 10개는 기본, 재우고 눕히고 씻기고를 반복하니 밥 먹을 시간도 없었어요. 정신차려보면 맨날 저녁이었죠. 거울 속 제 모습은 거지꼴이 따로 없었지만... 그래도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아이를 보면서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근데 출산 40일 째 쯤 되니까 목 뒤가 뻣뻣해지기 시작했어요. 으레 피곤해서 그런가보다 싶었는데, 목을 돌리다가 갑자기 뒷목 안 쪽에 따뜻한 느낌이 퍼지더라구요. 뭔가 불길하고 불안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목을 돌릴 수가 없었고, 아래를 내려다볼 수도 없었어요. 목디스크 급성 파열로 입원한지 2년이 다 되어 가는 시점이었는데, 재파열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주치의 선생님께서 입원을 권하셨지만 입원을 할 수가 없었어요. 젖이 마를까 걱정이 됐고, 갓난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저 혼자 입원실에 누워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어요. 



약을 먹고 통원 치료에 물리치료를 병행해야했습니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극한 육아의 시작이었어요. 예전엔 한쪽으로 매는 슬링 아기띠도 잘 하고 다녔는데 목도 어깨도 아파 더 이상은 무리였습니다. 5키로를 넘은 아이를 늘 한 쪽 어깨로 매고 있다보니 몸의 좌우 밸런스가 무너지면서 괜찮던 허리도 아프기 시작했어요.

 


그래 이때다 싶어 출산 전 사두었던 큰 아기띠를 꺼냈습니다. 하지만 이것 저것 채우고 풀고.. 입는 것 자체가 너무 번거롭더라구요. 슬링과는 차원이 다른 번거로움이었어요. 예방접종 시키러 나갈 때면 아기띠에 기저귀 가방에 외투까지 짐도 많은데 아기띠는 접히지도 가방에 들어가지도 않으니 늘 골칫거리... 게다가 남편이 맸다가 제가 매려고 하면 어딘가 모르게 헐거워져서 매 번 사이즈 조절도 번거롭고... 좀 더 간편한 건 없을까? 대안은 없을까? 싶었어요. 크고 무겁고 비싼 아기띠라고 다 좋은게 아니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할 수 있는 건 폭풍 검색과 하소연 뿐이었어요. 육아 선배들에게 물으니 본인들 아기띠 졸업했다며 힙시트 아기띠, 허리 벨트있는 국민 아기띠를 물려주더라구요. 더불어, 가볍고 간편하다는 아기띠를 사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에서 많이들 쓴다는 천아기띠, 미국에서 많이 쓰는 링슬링, 우리나라에서 개발된 휴대용 아기띠들, 베이비랩, 베이비랩의 간편 버전으로 유명한 수입 아기띠, 쿠션 없이 천으로만 만든 힙시트 아기띠, 전통 포대기까지. 써 본 아기띠만 총 9개. 이제 정착할 때도 되었는데 마음에 딱 들어 맞는게 없었어요. 이유를 정리해보니 아래와 같았습니다. 


 



1. 힙시트 아기띠  


- 아기 무게가 힙시트를 누르니 골반이 뒤로 꺾이면서 허리 아픔.


- 아기 오래 안고 있으면 치골 부분 결리다가 감각 없어짐.


- 아기 안은 상태에서 앉을 수 없음. 화장실 못 감. 


- 무엇보다 못 생김... 하고 있으면 자괴감 드는 디자인. 


- 가방에도 안 들어가서 허리에 묶어 덜렁거리며 매달고 다녀야함  


 


2. 허리벨트, 버클에 찍찍이 있는 일반 아기띠


- 채워야 하는 버클 많음.


- 아기 울 때 마다 입었다 벗었다 번거로움.


- 날개뼈 뒤에 있는 버클 혼자 잠그기 힘듦. 


- 허리에 땀참.


- 잠든 아기 내려놓을 때 찍찍이 소리에 깸.   


- 못생기고, 수납 안되고, 앉을 수 없는 것 공통적


 


3. 어깨끈이 좁은 아기띠 (대부분)


- 아기 하중이 어깨 위로만 쏠려 어깨 아픔. 덩달아 목도 아픔. 


 


4. 한 쪽 어깨로 지탱하는 아기띠 (링슬링, 신생아 슬링)


- 한 쪽 어깨로만 아기 체중을 지탱해야 하기 때문에 몸의 밸런스가 깨지면서 허리 안쪽 아픔.


- 오래 하고 있으면 어깨도 아픔. 


- 다만 휴대성은 좋음. 


 


5. 베이비랩


- 완성된 형태로만 보면 가장 안정적이고 어깨도 허리도 덜 아픔.


- 다만 아기 안기 전에 착용하는 과정이 번거롭고 오래 걸려 아기가 매번 오열함. 


- 식당에서 하려고 하면 식당 바닥 다 쓸어야 함. 비위생적.


- 상대적으로 부피가 커서 휴대성 떨어짐. 


- 디자인은 예쁨. 자존감 지켜주는 스타일. 


 


6. 일반 천아기띠


- 휴대성 갑.


- 착용하기 간편함.


- 다만 어깨가 좁으면 어깨 아픔.


- 원단 의존도가 너무 높음. 원단이 두꺼우면 너무 덥고. 원단에 신축성이 없으면 아기 넣고 빼고 활동하기 불편함.


 

아기띠 유목민 시절

 


이 내용을 남편에게 요약해서 말해줬어요. 10개 가까운 아기띠를 사서 써봤는데 마음에 쏙 드는 아기띠가 하나도 없다고. 그랬더니 "그럼 네가 만들어봐. 맘에 쏙 드는거. 이랑이 마음에 드는 거라면 다른 사람들도 분명 좋아할거야" 하더라구요. "말이 쉽네... 진짜.." 하고 가볍게 웃어넘겼는데, 그 말이 두고 두고 머릿속에서 지워지질 않았어요. 


 

그 날 밤에 잠이 안 왔어요. 만약, 내 맘에 쏙 드는 아기띠를 만들어 낼 수만 있다면(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나 같은 초보엄마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나처럼 이 아기띠 저 아기띠 사고 테스트하면서 쓰는 시간과 돈은 아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예쁘고 편하고 가벼운데 허리도 어깨도 덜 아픈 아기띠를 만들어 낼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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